여행스토리텔러
기억을 잃어가는 엄마와 떠나는 일본 온천 여행 본문
엄마는 4년전쯤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았고, 지금은 중기에 이르렀다. 처음 병원에서 진단을 받았을 때는 평소 엄마와 별반 다를 것이 없었기 때문에, 혹시 병원에서 오진한 것이 아닌가? 의심도 했다. 하지만 누구도 시간의 흐름을 거스를 수는 없었고, 엄마 역시도 시간이 흐르면서 서서히 기억을 잃어가는 속도가 빨라졌다. 엄마의 기억이 완전히 사라지기 전에, 두고두고 회상할 추억을 만들기 위해 일년에 한번씩 일본으로 온천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후지산 근처의 카네야마엔(kaneyamaen)이라는 호텔이다.

호텔 입구에서 손님을 맞이하는 후지산.
이 호텔은 후지산이 잘 보이는 것으로 유명하다. 호텔 정문에 도착해서 뒤를 돌아보니 덩치 큰 후지산이 우리를 반갑게 맞이했다.

일본의 온천 호텔은 종업원들이 로비에서 손님들을 맞이하는 것이 정석이다. 이 호텔에서는 여직원들이 모두 기모노를 입고 있었는데, 매일 기모노 디자인이 바꼈다. 별것 아닌 것 같았지만 매일 기모노 디자인이 바뀌니까 마치 내가 새로 옷을 갈아 잆는 듯이 산뜻함이 느껴져서 좋았다.




인공적인 정원과 자연 휴양림의 조화
호텔은 인공적으로 조성된 아기자기하고 깔끔한 정원과 바로 옆에 붙어 있는 맑고 깨끗한 숲이 매력적이었다. 정원은 바로 자연 휴양림과 맞닿아 이어지는데, 무심하게 계곡을 흐르는 물은 투명했고 나무가 커고 울창한데다가 매우 깨끗하게 잘 보존된 숲이었다. 한껏 크게 숨을 쉬어보니 공기의 질이 달랐다. 폐를 정화시키는 느낌이랄까?

호텔 건물 자체는 조금 연식이 있지만, 내부는 최근에 리모델링 해서 매우 깨끗하다. 일본 사람들이 꾸준히 수리하고, 고치는 일을 잘하고 좋아해서, 대부분 건물이건, 물건이건 관리가 잘 되는 편이다.


아래 사진에 보이는 나무 다리를 건너면 진짜 자연 숲이 나타나는데, 자연이 깨끗하게 보존이 되어 있는 탓에 밤에는 반딧불을 볼 수 있었다. 보통 반딧불을 볼 수 있는 시기는 일년에 딱 2주간 뿐인데, 덕분에 나도 태어나서 처음으로 말로만 듣던 밧딧불을 볼 수 있었다. 직접 보면 영화나 드라마처럼 그렇게 많은 수의 반딧불이 반짝반짝 거리지는 않는다. 뭐랄까 약간 듬성듬성 타고 남은 재에서 나는 불빛 가루 같은 느낌이었다.

나무 다리를 건너 쭉 숲 길을 따라 거닐다 보면 길을 따라 곳곳에 쉴 곳이 나타난다. 작은 차방도 있고, 앉아서 쉴 수 있는 테이블과 의자도 설치되어 있다. 물 소리와 새소리를 들으며 잠시 생각에 잠기기 딱 좋은 곳이다.



후지산이 보이는 방
공원과 숲을 둘러 본 후, 체크인을 하고 예약된 방으로 들어갔다. 방문을 열자 탁 특인 창문으로 눈부신 햇빛과 아름답고 푸른 농촌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순간 마음이 매우 편안해졌고, 이번 호텔 선택은 훌륭했다는 안도감이 생겨났다.
온천 호텔은 일반적으로 직원들의 응대가 일반 호텔보다는 더 친절하고, 이것저것 알려주는 것이 많다. 저녁 식사 시간, 온전 입욕 시간, 오늘 있을 이벤트 등에 대해 자세하게 알려주는 기모노 입은 친절한 일본 직원분. 말이 너무 많고 빨라, 살짝 알아듣기는 힘들었다. 오른쪽 사진은 너무 예쁘게 포장된, 일종의 웰컴 물수건?



엄마에게 여행이란?
사실 엄마는 단기 기억 능력이 많이 떨어져서, 아침에 있었던 일도 오후에는 기억하지 못한다. 다행히 장기 기억은 잘 유지가 되고 있어서, 가족을 못 알아보거나 하는 슬픈 일은 아직 발생하지 않았다. 어찌보면 이렇게 엄마와 함께 여행하는 것이 부질없다고 생각될 때도 있다. 하지만 여행하는 그 순간 행복하고 추억이 되면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생각이다. 우선은 방에 짐을 풀고 소파에 몸을 기대고 잠깐 쉬었다.


날씨가 맑아 호텔 방에서도 후지산이 동네 뒷산처럼 잘 보였다. 아직 6월이라 눈이 다 녹지는 않았다. 이렇게 가깝게 보이는 거대한 후지산도 날씨가 흐리면 구름 때문에 후지산이 전혀 안 보일 때도 많다고 한다.


숲 속에서 말차를
일본 온천 호텔 여행은 여러가지 패키지가 있는데, 이번에는 숲속에서 말차마시기 / 타이고 연주 / 반딧불 보기 / 바이올린과 피아노 연주 감상 이었다. 우선 호텔 패키지에 포함된 것 중, 계곡을 바라보며 말차를 마시는 프로그램에 참가했다. 그냥 창밖을 보며 조용히 말차를 마시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없는 정말 일본스러운 프로그램이다. 조용히 계곡을 바라보며 쓰디 쓴 말차를 한잔을 마시고, 달디단 과자로 입맛을 바꿨다.



후지산을 바라보며,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다
일본의 괜찮은 온천 호텔은 방의 발코니에 조그만한 노천당이 있다. 발코니에 설치된 노천탕의 뜨거운 물에 들어가 몸을 적셨다.
멀리 후지산이 정겹게 보인다. 너무 가까워서 손을 뻗으면 잡힐 것 같다.



라운지에서 사색에 잠기다
일부 타입의 방을 예약한 사람들은 라운지를 이용할 수 있다. 커피와, 음료가 기본적으로 제공되고, 낮시간에는 가벼운 술과 음식도 제공된다. 조용히 앉아 정갈하게 조성된 앞마당을 바라보며 커피를 마셨다. 여행을 왔지만 여러가지 상념으로 한동한 착착한 기분이 들었다.




부대 프로그램들
타이고 연주를 보고, 칵테일을 마시며 바이올린과 피아노 연주를 감상했다. 시골 회관 분위기처럼 소박했지만, 나름 운치가 있었다.
모든 패키지 프로그램에 참가하니 밤 10시에 이르렀고, 잠이 마침 잘 오도록 적당히 피곤해졌다.




추억은 밧딧불처럼
영상을 보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텐데, 숲속이었기 때문에 달도, 인공적인 라이트도 없다. 조그만 불빛이 나타났다, 사라졌다 할텐데, 그게 바로 밧딧불이다. 영상이 실제느낌을 100% 완전히 담아낼 수 없겠지만, 그래도 거의 실제에 가까우니, 혹시 한번도 밧딧불을 본적이 없는 사람이라면 한번 시청해보길.
숙소를 떠나며
다음날 아침, 풀장 옆에 마련된 카페에서 조식을 먹었다. 음식 종류가 그렇게 많지는 않지만, 일본 스타일 음식이라서 건강에는 좋을 것 같았다. 햇빛이 잘 드는 식당이라 아침에 식사할 때 기분이 상쾌해졌다. 후지산에서 받아온 냉수도 제공된다.






일본 온천 여행은 대부분 1박2일이다. 더 오래 있기에는 다소 비싸기도 하고, 모두 시간적인 여유가 없어서 대부분 일본 사람들은 1박 2일 패키지를 즐긴다. 떠나는 날도 오는 날 처럼 날씨가 맑아 후지산과 경쾌하게 작별 인사를 나눌 수 있었다. 떠날 때도 처음 왔을 때와 마찬가지로 직원들이 친절하게 배웅을 해준다.




특별한 기억
어떤 사람들은 일본식 과잉 친절이 조금 가식적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는데, 사람의 생각은 다 다르니까 뭐가 옳은지 그른지 단정할 수는 없겠다. 단지 나에게는 이날, 맑은 후지산을 배경으로 친절한 직원들이 손님들이 태운 버스가 안 보일때까지 손은 흔들어 배웅을 해주는 장면이 참 인상적이었고, 그래서 이 날이 오래오래 기억될 수 있을 것 같아서 좋았다. 우리에게는 오래오래 유지되는 기억이 중요하니까. 아름다고 인상적인 장면을 만들어 준 호텔과 호텔 직원들에게 감사한 마음이다.
마무리
엄마와 온천 여행을 하기 시작한지 이제 2년째다. 내년에도 특별한 일이 없다면 엄마와 함께 온천 여행을 떠날 생각이다. 특별히 바라는 것은 없다. 단지 내년에도 엄마와 함께 오늘의 이 여행을 화제삼아,
작년에 그때 그랬잖아~, 기억하지?
이런 류의 소소한 대화가 가능하기를 바랄 뿐. 그런 작은 소망과 함께 특별할 것도 없는 소소한 여행 기록을 남겨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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